여성의 눈으로 본 채식
/정고미라
채식이라는 것을 고려할 때, 여성일 경우에 과연 어떤 차이가 있는가? 쉽게 생각하면 어떤 이들은 채식이 다이어트와 연관된다고 생각할 것이고, 또 다른 이들은 요리의 담당자(?)로서의 여성에게 더 직접적인 관심의 대상이 된다고 추측할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다이어트나 요리에 관심이 없다. 하지만 여성으로서 채식이라는 화두가 내게 주는 특별한 의미가 분명히 있다. 이에 대한 나의 생각을 간단히 드러내 보이고자 한다.
내 생각에 채식이란 채소를 먹는다는 뜻이라기 보다는 고기를 먹지 않는다는 뜻이다. 고기란 무엇인가? 그것은 동물의 시체이다. 대체로 그 시체를 토막내어서 포장지에 싸서 판매하면 그것은 ‘고기’라고 불린다.
그렇다면 채식이란 바로 동물의 시체를 먹지 않음을 뜻한다. 이런 말을 했을 때 많은 이들은 거부감을 느낀다. 왜냐하면 ‘그럼 나는 동물의 시체를 먹는 야만스러운 사람이란 말이냐?’ 라고 반문하고 싶어지기 때문이다. 거부감을 느끼는 이유는 간단하다.
동물의 시체란 혐오감을 주는 이미지로 구성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은 대체로 사람의 시체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따라서 내가 동물의 시체를 먹는다는 것은 말의 뉴앙스에서부터 엄청난 혐오감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동시에, 고기를 먹는 자신의 행위는 인류의 역사 이래로 항상 있어왔던(?) 너무나 자연스러운 문화이기 때문에 자신에게 잘못이 있다는 말을 듣는다는 건 너무 억울한 일이다. 고기를 먹는 일은 자연스럽지만 동물의 시체를 먹는 일은 섬뜩하다.
그러나 이 두가지가 같은 행위임을 우리는 인정하지 않을 수 있을까. 머리로 생각해보면 인정해야겠지만 마음으로는 인정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 마음은 나름대로의 논리를 만들어낼 것이다. 동물이 사람과 절대적으로 다른 이유에 대해서.
<동물에게도 영혼이 있을까?>
중세시대 서양의 신학자들은 여성에게도 영혼이 있을까라는 질문을 두고서 논쟁을 벌였다고 한다. 지금의 사람들은 이 사실에 대해 참으로 한심하다고 느낄 것이다. 게다가 별로 대답할 필요성도 느끼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의 누군가에게 과연 여성에게도 영혼이라는 것이 있는지를 증명할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이를 제대로 증명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너무나 자명한 것을 증명하라고 했을 때 우리는 말문이 막히곤 한다.
오늘날 동물을 죽이는 행위의 도덕성 여부를 고민하는 사람이 있다면 아마도 비슷한 상황을 재연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의 핵심은 왜 이런 고민을 하는가이다. 동물에게 영혼이 있고 없고의 차이는, 우리가 그들을 근본적으로 대우할 필요가 있는가 없는가의 문제를 의미한다. 함부로 이용해도 되는 대상인가 아닌가에 결정적인 기준으로 작용할 것이기 때문이다.
가부장적인 문화는 기본적으로 여성을 수단시하고 있다. 혈통은 남성을 기준으로 해서만 존재하고 여성은 그 혈통을 이어나가는 수단이며, 일상적 필요를 충족시켜주는 가사노동자이며, 남성의 성적인 욕구를 해소시켜주는 대상이다.
여성에게는 스스로의 존재 그 자체의 존귀함 보다는 남성의 필요를 위해 봉사하는 한에 있어서만 가치가 부여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현모양처가 아닌 무소속으로 혼자 사는 여성은 사회적 지위를 얻을 수 없었고 그런 여성이 독립적인 힘을 갖고 있을 때에는 마녀로 인식될 지경이었다.
여성이 수단시되어 온 역사의 가장 전형적인 경우가 바로 성에 대한 이중규범이다. 남성에게는 순결이 중요시되지 않으면서도 여성에게는 성욕 자체를 부인하는 관점은 그야말로 여성의 성이 남성에게 수단시되는 것이 합당하다는 이해에 기반해있다.
그렇기 때문에 창녀의 소위 왕성한 성욕(?)은 남성의 필요에 부응하는 것으로서 비하되는 동시에 제도적으로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이다. 인간이 다른 인간을 수단시해서는 안된다는 도덕성에 공감했던 사회는 대체로 여성의 몸이 수단시되어야 한다는 관념에는 아주 오래도록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했다. 여성을 인간(남성)과 근본적으로 다른 존재로 인식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사실 현재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한다. 매매춘을 필요악이라고 생각하는 관점에서는 자발적으로 매춘을 하려는 여성들이 없을 경우 인신매매를 통해서라도 사창가가 존재해야 한다고 볼 것이기 때문이다.
특정 여성들이 감금되어서 그들의 신체의 일부 - 사실은 인격 그 자체 - 를 다른 이들의 욕구를 위해 이용당해야 한다는 것에 대해 수긍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이 존재한다. 하지만 매매춘제도가 도덕적으로 인정할 만한 것이 못된다고 생각하는 많은 이들에게 가축제도는 별다른 문제 없이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동물에게는 영혼이 없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여기서 영혼이라는 단어에 대해 복잡하게 논의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죽은 후에 영혼이 있는가 여부의 문제와 굳이 연관시킬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죽은 후에 영혼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사람을 자기 마음대로 쉽게 죽여도 된다고 보진 않기 때문이다. 동물에게 영혼이 없다는 말 혹은 관념은 동물에게 생명체로서의 존엄성이 없다는 뜻일 뿐이다.
그렇다면 과연 그러한가? 어떤 대상에게 존엄성이 있는지 없는지는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성경이나 경전의 말씀들을 통해서 알 수 있는가? 아니면 그 대상이 실제로 보여주는 탁월한 능력을 통해서 알 수 있는가?
그러나 어떤 능력을 평가할 것인가?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가에 대한 과거의 논의들은 종종 능력의 문제를 다루었다. 하지만 여성‘도’ 남성과 똑같이 수학문제를 풀 수 있고 여성‘도’ 남성과 똑같이 사법고시에 합격할 수 있다는 사실이 존엄성(평등)의 핵심이 아니라는 것을 이제 사람들은 깨달아가고 있다.
여성이라는 ‘특수한’ 존재가 남성이라는 ‘일반적 기준’과 같아질 수 있는가라는 방식으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야말로 오류였던 것이다. 누가 기준이란 말인가? 능력과 존엄성의 기준을 스스로에게 고정시켰던 남성중심적 사고가 문제였던 것이다.
남성집단의 경직된 에고가 스스로의 반성을 통해서이든 여성들의 반격을 통해서이든 조금씩 열리기 시작할 때에, 여성에게도 영혼이 있는가 여부는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니게 된다. 여성은 남성과는 상이하지만 유사한 방식으로 독자적인 목적과 자유의지를 가진 존엄한 인간이라는 사실이 자명하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인간들은 아직까지도 비인간 동물들을 존엄성에 있어서 완전히 별개의 존재로 취급하고 있지만 오늘날 인간중심주의에 대한 반성과 더불어 이러한 집단적 아집은 많이 흔들리고 있다.
인간 이외의 동물들과 자연환경은 모두 인간을 위해서만 존재한다고 믿는 사람들조차, 환경의 파괴가 결과적으로 인간에게 불리한 결과를 낳는다는 사실을 목격하고 있다. 소나 돼지는 오로지 인간에게 고기를 제공하기 위해 존재한다고 보는 관점은 공장식 축사를 통해 이들을 이윤을 낳는 기계쯤으로 전락시켰지만 억압과 착취가 낳은 수많은 질병들, 광우병 등으로 인해 그 폐해를 인정해야 하는 상황이 되기 시작했다.
에코페미니즘(혹은 생태여성주의)은 여성에 대한 남성의 지배나, 자연에 대한 인간의 지배는 같은 뿌리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인식하기 때문에,억압에서 해방되기 위해서는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음을 이해할 필요를 역설하고 있다.
가부장적 사고는 남성중심적일 뿐만 아니라 인간중심적이고 이 두가지는 주체와 대상(타자)을 분리시켜서 타자를 억압할 뿐만 아니라 스스로도 소외되고 만다. 왜냐하면 연결되어 있는 것을 분리적으로 사고한다는 것은 의식 수준에서건 무의식 수준에서건 자기기만을 반드시 연루시키기 때문이다.
정직하지 못할 때 기만을 지탱시키기 위해서는 많은 에너지가 요구되는데 에너지 소모가 클수록 결핍에 대한 강박관념이 또다시 두려움과 폭력을 부르고, 폭력은 스스로를 정당화하기 위해 또다른 부정직을 생산하는 악순환을 부른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어떤 대상을 억압하는 모든 경우에 모종의 자기기만의 메카니즘이 자리잡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성을 억압하는 남성중심주의나, 동물을 억압하는 인간중심주의나, 모두 스스로를 정당화하기 위해 논리를 세우기 바쁘다.
<식물도 생명이라고?>
그런데 이 시점에서 어김없이 나오는 질문이 있다. <그럼 식물은 생명이 아닌가?> 인간중심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면 동물중심주의에서도 벗어나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대체로 이러한 질문은 <식물도 생명이므로 죽여서는 안된다, 그러나 우리가 아무것도 먹지 않게 되면 살 수가 없다, 따라서 어차피 우리는 생명체를 먹을 수밖에 없으므로 동물을 죽이는 것에 대해 그렇게 호들갑을 떨 필요가 없다>는 주장을 암시한다. ‘
이미 버린 몸, 맛있는 거 실컷 먹다 죽자’는 류의 관점일 수도 있지만, 다른 한편 매우 진지하게 형평성을 고민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명분의 차원에서 보다 설득력 있는 무언가를 요구하는 것일 수도 있다. 진지한 질문자들을 위해 나는 진지하게 다음과 같이 대답하고자 한다.
당신에게 형평성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어려웠던 시절 가난했기 때문에 맏아들을 대학에 보내지 못했었는데 경제 사정이 좀 나아진 지금 막내딸에게 대학공부를 시키자니 맏아들과의 형평성에 어긋나서 그만둘 것인가? 무엇을 위한 형평성인가? 평등의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당신에게 그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나에게 있어서 평등은 보다 나은 삶을 위한 평등이지, 하한선을 기준으로 삼는 억압의 평준화는 아니다. 평등의 가치는 해방시키기 위해서이지 억압하기 위해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우리는 이와같은 논리전개를 할 때가 많은 것이 사실이다.
어떤 때에 이런 논리를 전개시키는가? 구체적인 감정이입이 배제되어 있고 상황이 추상화되어 있을 때 그렇다. 올바른 판단을 내리기 위해서는 감정을 최대한 배제시켜야 한다고 대부분의 남성 철학자들은 주장해왔다.
사심을 버린다는 건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동정심과 연민도 사심인가? 나의 이익이 아닌 타자의 고통에 공감하는 것이 사심인가? 이성을 우위에 두는 패러다임은 (이기적) 사심과 더불어 (이타적) 공감능력까지 버리는 잘못을 보여줄 때가 많은데, 위의 상황이 바로 그 사례이다.
식물은 분명히 생명이다. 맞는 말이다. 그리고 사람도 생명이다. 어차피 같은 생명이기 때문에 모두 살려야 한다는 말이나, 모두 죽여도 된다는 말이나 극단적으로 추상화된 발언이기는 마찬가지이다.
내가 친하게 지내는 사람, 애완동물, 화초 등은 나와 무관하게 느껴지는 행인, 횟집의 물고기, 슈퍼마켓의 상추와는 다르게 경험된다. 이 경험을 무시하고 추상화된 평등의 가치를 고집할 수는 없는 법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기와 무관하다고 여겨지는 대상들에 대해서는 아주 쉽게 추상화된 평등개념을 적용시키곤 한다.
한국에서의 ‘개고기’ 문제에 대한 논쟁에서도 이와같은 주장들이 나타나곤 한다. 개고기를 옹호하는 입장에서는 종종 소나 돼지는 먹으면서 왜 개는 안 되는가라고 반문한다. 이들은 동물들이 평등하다고 함으로써 형평성의 이념을 열렬히 신봉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러한 입장은 동시에 개들을 식용견과 애완견으로 나눔으로써 자기모순에 빠질 뿐이다. 소에 비해 개가 누리는 특권을 인정할 수 없다는 논리가 어찌하여 식용견에 비해 애완견이 누리는 특혜를 인정한단 말인가? 종과 종 사이의 불평등에 수긍할 수 없다면 종 내부의 불평등도 수긍하지 말아야 하는 것 아닌가?
개고기 논쟁은 사실 논리로 승부를 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개에 대한 애정이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사회적으로 공감을 얻어내는가에 달려있다고 보인다. 물론 공감을 이끌어내기 위해 많은 정보들이 주어져야 한다는 것은 당연하다.
이 과정에서 많은 이들은 개가 다른 동물과는 달리 인간과 얼마나 가까운지에 대해 또는 얼마나 영리한지에 대해 강조를 할 것이다. 물론 영리하다고 해서 더 많은 권리를 누려야 한다고 말할 수만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주장들은 공감대를 넓혀나가는 일에 도움이 되는 것만은 확실하다. 많은 사람들이 개를 음식으로 간주하지 않는 이유는 사람을 반기고 지켜주고, 인간과 감정적으로 교감을 나누는 개들에게서 연대감을 체험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다른 ‘가축’동물들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변화하는 과정에서 이들을 음식으로 간주하는 관점도 서서히 도전받게 될 것이다. 동물들을 무가치한 본능적 생명체 그 이상으로 볼 수 있는 영적인 각성이 이루어지는 정도에 따라 다르겠지만 말이다.
여성이라는 존재를 자기만의 삶을 영위해나갈 권리를 지닌 존엄한 대상으로 볼 수 있기까지 긴 역사가 필요했던 것을 생각한다면 아직 시간이 좀 필요하긴 하겠지만, 내 생각에 영적인 혁명은 점점 빠르게 전개되고 있다.
동물을 존중하는 마음가짐은 식물을 함부로 남용하는 관점을 내포하진 않는다. 식물들에게도 생명이 있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살고 싶어하는 동물의 몸짓과 피흘리는 시체를 볼 때 우리가 느낄 수 있는 감정이, 밭에서 감자를 캘 때 느끼는 감정과는 다르다.
이러한 차이를 인정하는 것은 형평성을 실현하는 데에 실패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들의 수준에서 우리가 경험하는 세상을 보다 정직하게 인정하는 데에 성공하는 것이라 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가능하다면 자신과 타자의 고통을 줄이는 것을 원하게 마련이다.
사람을 죽일 필요가 없다면 죽이고 싶어하지 않듯이, 동물을 죽일 필요가 없다면 죽이고 싶어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단백질을 위해 반드시 동물을 죽여서 먹어야 한다고 철썩같이 믿어왔다.
고기를 먹지 않는 스님들이나 채식인들이 어떻게 생명을 부지하는 지에 대해서는 항상 별개의 사실로 두면서 연결을 짓지 않았지만 말이다. 어찌되었든, 육식의 필요성이 허구임을 알아나갈수록 육식의 자연스러움이나 필연성이 약해지고 덩달아 가축동물들에 대한 감수성이 달라지게 될 것이다.
프랑스 대혁명 당시 여권선언에 대해 일부 남성들은 동물권선언이라는 비아냥거리는 팜플렛으로 대응한 적이 있다. ‘여성들에게도 권리가 있다면 동물에게도 권리가 있겠네’ 류의 야유였다. 당연히 말도 안된다는 전제 하에서 했던 표현이었지만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말이 되고도 남는다.
마찬가지로 식물에게도 생명이 있다는 문제의식(?)은 육식을 합리화하기 위해서 제기되었을 때에는 가치가 떨어지지만, 존중심의 확대의 맥락에서 본다면 하나도 틀린 말이 아니다. 식물 뿐만 아니라 산, 대지, 지구 전체가 하나의 숨쉬는 생명체로 모두에게 인식될 때, 그때 아마도 억압이 실질적으로 사라지지 않을까 싶기 때문이다.
<연관된 인식의 필요성>
지구상에는 아직 수많은 사람들이 기아와 빈곤, 전쟁과 폭력 등으로 고통받고 있다. 혹자는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동물에 대해 신경을 쓸 때가 아니라고 볼 수도 있다. 마치 남성들 사이의 계급갈등이 심각한 상황에서 여성의 문제가 중요한 정치적 의제로 떠오르지 못했던 것과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한 사회에서의 여성의 지위는 그 사회의 진보의 수준의 반영이기도 하다. 특히, 여성을 대하는 그 사회의 관점이 결국 남성들간의 관계에서 동일한 방식으로 나타난다고 할 수 있다. 대부분의 여성노동자들이 임시직으로 취업하는 상황에서 결국은 정규직을 차지하고 있던 남성노동자들에게까지 고용불안정이 확대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동물을 대상으로 행하는 실험과 유전자 조작 등은 인간에게까지 계속 확대되고 있다.
나와 너(저것)가 분리되어 있다고 보는 기계론적 관점에서는 서슴없이 자행하는 많은 일들을 전체론적 관점에서는 하지 않게 되는데, 이는 바로 상대에게 행하는 그것이 바로 나 자신에게 행하는 것임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대에 대한 지배나 기득권을 계속 누리기 위해서는 상대를 최대한 분리된 존재로 파악해야 할 필요가 생긴다. 나와 타자 사이의 분리는 타자 자체를 파편화시키는 경향으로 이어진다.
나는 여성에게 행해지는 가장 심한 학대가 그녀를 몸으로 환원시키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언제부턴가 우리사회에서 ‘쭉쭉빵빵’이라는 표현이 사용되기 시작했다. 몸매가 잘 빠진 여성을 지칭하는 이 표현은 그러나 이제는 미인에 대한 보통명사가 되었고 여성의 가치가 성적으로 매력적인 몸매와 동일시되고 있다.
미인대회에서 점수를 매기는 방식은 그야말로 우량소 대회를 방불케한다. 다리가 휘진 않았는지, 유방이 처지진 않았는지 등등을 평가하는 미인대회는 언제부턴가 획일화되고 규격화된 미인 대중들을 생산하기에 이르렀다. 수많은 여성들이 몸과 얼굴을 성형수술을 하고 있는데, 이는 그만큼 여성이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 몸에 두어지기 때문이다.
몸은 비하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되지만, 사람을 몸으로 환원시키는 것은 분명히 사람을 비하하는 것이 된다. 길거리 어딜 걸어가도, 그 어떤 광고를 보더라도 여성의 몸은 소비의 대상으로 널려져 있다.
비디오 가게이든 백화점 세일광고이든간에, 얼굴 없는 다리들, 이름없는 가슴들이 항상 남성의 욕구를 돋구기 위해서 사방에 편재해있다. 우리에게 인식되는 그 여성적 몸들은 이미 인격성을 잃어버린 고기 덩어리들과도 같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매춘여성에게 행해지는 학대이기도 하다.
자신의 삶을 영위해 나가던 동물이 토막내어지면 그것은 고기라고 불린다. 식탁에서 고기를 먹는 사람은 그 고기가 어떤 동물의 몸이었는지에 대해 생각하지도 않지만 알려고 해도 알 수가 없다. 포르노에서, 사창가에서, 단란주점에서 서비스를 제공하는 여성들은 만질 수 있는 몸은 있지만 기억될 수 있는 이름은 없다. 그녀들의 몸은 소비되기 위한 고기처럼 그저 물질 덩어리에 불과하다.
과거에 여성들은 자기 이름도 없이, 그저 아이를 낳는 그릇이거나, 살림을 하는 어머니이거나, 성욕을 만족시켜주는 수단이었다. 하지마 이름이 없어도 삶을 느낄 수 있는 존재였었고 이 사실을 인정받지 못했을 뿐이다.
아직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동물이란 그저 움직이는 몸으로만 이해되고 있다. 먹고, 배설하고, 교미하고, 인간을 위해서가 아니면 별달리 살아있어야 할 이유가 없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야생동물이 아닌 가축에 대해서는 특히 이런 식의 생각이 많이 퍼져있는 것같다. 사실 그럴 수밖에 없다.
좁은 닭장 안에서 날개 한번 제대로 펴지 못한 채 밤낮으로 알을 낳기만 하는 닭을 보면서 우리는 과연 닭을 느낄 수 있는가? 우리의 눈에 비친 닭은 정말 아무런 독자적인 개체로서의 살아갈 이유가 없어보인다. 평생을 움직이지 않고 가끔식 울어대기나 하는 그 모습을 보며 무슨 가치로움을 느낄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누가 닭으로 하여금 그런 모습을 갖게 했는가? 과거에 여성들은 집안에 갇혀진 채 평생을 아이 낳고 기르고 집안일만 하며 살도록 제한을 받았다. 이런 여성들의 모습을 보면서 어떤 남자가 그녀들에 대해 위와 비슷한 생각을 했다면 어떨까?
여자들은 아무 생각없이 그저 본능적으로만 살아가는 존재들이라고 규정한 수많은 남성 철학자들의 단순함은 이와 다르지 않다. 그네들의 고상한 사상은 제도적 억압의 결과를 원인으로 규정하는 식민자의 것이다.
오늘날 과거의 유명한 철학자들의 저서들을 살펴보면 그들이 가졌던 여성비하적 관점에 대해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의 지혜가 왜 여성들에 대해서만 유독 적용되지 못했던 것일까? 그것은 그들이 하나같이 여성의 희생을 딛고서 삶을 영위해나갔기 때문이다.
세상을 아무리 넓게 볼 능력이 있는 사람도 자기 발 밑은 제대로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생존을 위해 여성의 희생을 필요로 했던 사회는 여성의 고통에 대해 무감각했다. 마찬가지로 생존을 위해 고기를 먹는 사회는 고기의 근원지에 대해 무감각하다. 동물을 보호해야 한다고 하는 담론조차도 ‘가축’이라는 개념 속에서는 고통을 공감하지 못하도록 차단벽을 세워두었다. 이 차단벽이 제도적으로 보장되어 있을 때에는 생각할 필요조차 없어진다.
사창가를 이용하거나 기타 상품화된 여성의 성을 소비하는 남성에게는 상대 여성이 느낄 수 있는 고통이 절대로 전달될 수 없다. 고기를 먹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역시 가축의 고통이 절대로 전달될 수 없다.
그 이유는 무의식 수준에서 이미 공감할 수 있는 가능성을 스스로 차단했기 때문이고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무수한 상징들이 차단벽을 굳건히 지켜주고 있기 때문이다. 햄 포장지에서 괴로워하는 돼지를 본 적이 있는가?
닭튀김 포장지에서 죽어가는 닭을 본 적이 있는가? 갈비집에서 눈물 흘리는 소를 본 적이 있는가? 참치 캔에서 참치는 즐겁게 팔딱이고 있고 소세지의 돼지는 항상 웃는 얼굴이다. 그러나 그들 중 하나라도 흔쾌히, 즐겁게 목숨을 내놓은 동물은 없다.
성을 팔고 있는 여성은 행복할 수 없다. 매춘여성이 된다는 것은 사회적으로 죽는 일이다. 그런데 왜 그녀들이 드러나 있는 광고나 전단지, 비디오나 매체들에서는 그토록 즐겁게 미소짓고 있을까? 이미지의 위력은 이런 것이다.
그들의 미소를 보면서 소비자는 마음 편히 소비자로서 그네들을 이용할 수 있게 된다. 이데올로기란 이런 것이다. 도살장은 생지옥이고, 사창가는 암울하다. 누구나 이것을 알 수는 있다. 하지만 누구도 이것을 알려고 하지 않는다. 알려고 하지 않을 뿐더러 스스로를 속이는 논리들을 개발한다.
남성의 ‘자연스러운 성욕’을 위해서 매매춘은 필요악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 고대 사회들에서는 신들의 노여움을 풀기 위해 특정 사람들이 죽어서 희생양이 되어야 한다고 보는 경우도 많았다. 이처럼, 현실에 대한 해석은 그것을 인식하는 능력의 수준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
남녀가 평등해지면 여성들이 다 집을 뛰쳐나갈 것이고 그렇다면 누가 밥을 할 것이며 누가 아이들을 돌볼 것이며 누가 병든 부모를 돌볼 것인가라고 걱정하는 남성들이 있다. 가축을 기르지 않게 되면 단백질은 어떻게 섭취할 것이며 우유와 계란은 어떻게 얻을 것이며 무얼 먹고 기운을 차린단 말인가라고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러한 두려움들이 사실상 무지에 기반한 것임을 이해하게 될 때 우리 무의식 속에 있는 차단벽은 철거될 것이고, 우리 마음 속에 누구에게나 있는 동정심과 공감능력이 되살아날 것이다. 그때에는 누군가가 혹은 어떤 생명체들이 어떻게 고통받아 왔는지가 새삼스럽게 느껴질 것이다.
하지만 무언가를 많이 포기해야 한다는 우려나 기득권에 대한 집착은 인식을 왜곡시키는 방향으로 항상 영향을 미칠 것이다. 두려움을 내려놓고, 세상을 정직하게 바라보려고 노력할 때, 행복은 타자를 짓밟고 올라선 위에서가 아니라 함께 하는 큰 길에 다같이 들어서는 평화라는 걸 이해하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내 발가락이 아플 때 나도 아프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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