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타고라스
/역사속의 채식인중
19세기 초에 '채식인(vegetarian)'이라는 낱말이 고안되기 전까지 식물만을 먹는 식이가 '피타고라스식 식사법'이라고 불린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피타고라스는 서구 채식의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인물이다.
그는 그리스의 섬 사모아에서 기원전 580년경에 태어났는데, 당시에 이곳은 문화적으로 과학적으로 문명화된 곳이었다.
부유한 상인이었던 그의 아버지의 둣받침으로, 피타고라스는 어려서부터 당대의 유명한 철학자들로부터 배울 수 있었다.
피타고라스는 수학을 더욱 배우라는 탈레스의 권유에 힘입어 다시 세계의 문화의 중심지였던 이집트로 유학을 가게 된다.
이집트의 '디오폴리스'에서 엄격한 시험을 통화하고 비밀을 지키겠다는 침묵의 서약을 한 후 그는 이집트의 신비주의 그룹에 입문을 하게 되는데, 채식을 해야 할 뿐만 아니라 모(wool)와 같은 동물성 옷조차 입어서는 안되며, 신발은 '파피루스'로 만든 샌들만이 허용되었다.
피타고라스는 정화의식과 기하학, 오시리스의 의식 등을 배우게 된다.
피타고라스는 기원전 529년, 남부 이탈리아의 도시였던 크로톤에 자리잡는다.
한창 번역하고 있던 이곳에서 피타고라스는 열렬한 환영을 받는데, 3세기 피타고라스의 전기를 썼던 '이암블리커스'는 한번에 2,000명이 넘는 청중들이 파타고라스의 연설을 들었다고 묘사한다.
그는 곧 이탈리아 남부지역의 600명이 넘던 찰학자들의 리더가 되고, 도시 근교에 모든 살아있는 존재들과의 신비적인 합일과 비폭력, 채식을 기초로 한 학교를 세운다.
피타고라스 사회는 신비주의적 명상과 고도의 지적인 활동, 육체적인 단련, 채식주의가 함께 하였던 이상적인 공간이었다.
피타고라스 학교는 플라톤의 아카데미와 정통 철학자 그룹들의 모델이었을 뿐 아니라, 에세네와 같은 비교적이고 신비주의적인 신앙사회의 기초를 형성하는 데에도 영향를 주게 된다.
파타고라스 형제단의 중요한 기본 교의는 영혼의 초월에 있었다.
힌두교처럼 피타고라스는 영혼이 끝없는 윤회의 사이클을 통해 지구에 존재하는 생명의 형태로 태어난다고 생각했다.
피타고라스는 물고기부터 철학자까지 모두 형제관계이고, 영혼은 이들 형태들 간에 이동할 수 있다고 가르쳤다.
따라서 이들에게 있어 채식은 너무나 당연한 실천이었다.
따라서 고기를 먹는 것과 물질주의는 피타고라스 학교에서는 금기였다.
피타고라스 학교의 철학자들에게 그것은 도덕적인 수치로 간주되었을 뿐만 아니라, 순수한 명상을 방해하는 것으로 여겼다.
그들은 또한 흰색의 식물성 망토를 잆었으며, 동물을 사냥하거나 양털로 만든 옷도 사용하지 않았다.
피타고라스는 사람들이 동물들을 해하지 않도록 주의시켰으며, 야생동물조차 벌이 아닌 말과 행위로 가르치려 했다.
그는 더 나아가 정치가들에게 법을 제정하여 사람들이 동물을 먹지 못하도록 시도하였다.
피타고라스 형제단에게 있어 인간과 동물을 친족관계였다.
따라서 어떤 동물도 해를 입어서는 안되는 것이었고 입법은 분명 필요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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