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채식인
/역사속의 채식인중
신라와 백제는 법으로 채식을 실천했다.
철인 '피타고라스'는 자기가 살던 작은 도시국가에 육식을 법으로 금하고자 하였지만, 결국 실패하였었다.
그러나 모든 살아있는 것의 생명을 소중히 하는 전통이 내려왔던 이 땅에서는 채식의 법이 온 국가에 실현되고야 만다.
'삼국유사'에는 백제 제29대 '법왕'이 전 국민들에게 살생을 금하였다고 나온다.
'백제 제29대 법와의 이름은 선(宣) 또는 효순(孝順)이라고도 한다. 개황 10년 기미(599)에 즉위했는데, 이해 겨울에 조칙을 내려 살생을 금지시키고 민가에서 기르는 매나 새매 따위를 놓아주고, 또 물고기 잡는 기구를 불태워 버리고 고기 잡는 것을 일체 금지했다."
그러나 국가적인 채식 실천은 백제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삼국사기 신라본기에는 법흥왕도 온 국민에게 살생을 금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법흥왕 16년(529)에 영을 내려 살생을 금지시켰다."
동물의 살생을 금하였으니 동물의 살을 먹지 않게 된 것은 당연하다.
6세기 우리나라 삼국시대의 살생, 육식금지법은 백년 후 일본으로 건너가 아스카 시대의 살생을 금지령으로 이어진다.
1차가 675년 텐무왕 때의 '육식금지법', 2차가 721년 텐쇼와때의 '살생금지법'이다.
고려인은 어진 사람들이었다.
고구려, 백제, 신라의 채식전통은 고려시대에도 잘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고려도경은 1123년 송나라 사신 서윤적을 따라왔던 서궁이 고려를 방문하면서 1개월간 보고 들은 것을 글과 그림으로 남긴 것이다.
서궁은 고려인이 평상시에는 쌀과 채소를 중심으로 식생활을 하며, 고기를 먹는 것은 극히 드문 일이라고 증언하다.
고려의 관리들조차 평상시 곡류와 채소류를 위주로 한 채식인이라는 것이니, 일반 서민들 역시 채식을 하였을 것이다.
고려도경에는 고려 백성들이 해산물을 주로 먹었다 하며, 육류는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다.
서궁은 고려인들이 일상에서 채식을 위주로 하였기에 잡아 먹고자 동물을 키우지도 않을 뿐 아니라, 동물을 도살하는 일도 매우 서투름을 증언한다.
그리고 어류를 잡을 지라도 성긴 천으로 고기를 힘들게 잡는다고 표현한다.
이미 삼국시대에 동북아시아의 바다를 주름잡고 놀라운 건조 기술을 자랑하던 우리 조상님들이었다.
멀리 중국와 일본에까지 아름답고 정교한 직물을 전하던 기술이 있었다.
그런데 촘촘한 그물을 만드는 기술이 부족해서 성긴 천을 사용하였는가?
작은 새끼들, 치어들을 놓아주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우리 조상들은 작은 미물들이 죽을까봐 뜨거운 물조차 식혀서 마당에 뿔던 어진 분들이었다.
당시 널리 알려졌던 불교나 도교에서도 살생에서 특히나 경계를 하였던 것은 작은 새끼들, 태어나지도 않은 태아 상태나 알의 상태의 생명들을 해치는 것이었다.
서궁은 고려인이 다스리는 나라는 매우 어질어 생명을 해하는 것을 함부로 하지 않는 나라라고 덧붙인다.
고려인들이 외국에서 사신이 올때 접대용으로 어찌할 수 없이 동물을 음식으로 삼는 것 뿐이고 그때를 위해서이긴 하지만, 잡아먹고자 동물을 기르는 일은 아주 특별한 일로 여겼다.
일상에서 고기를 먹는 일이 없으니, 동물을 도살하는 방법도 역시 잘 모를테고 당연히 요리하여 먹는 법도 몰랐을 것이다.
고려인들이 고기를 먹지 않았던 것은 오랜 역사 속에서 내려온 생명을 소중히 하는 생활철학의 힘이었다.
조선시대
조성왕조에는 36위의 왕이 나오는데 평균 수명은 47세이다. 태종에서 성종까지 전기의 왕들은 풍질, 당뇨, 종기, 이질 등을 앓았고 이로 인해 사망한 경우가 많다.
이것은 대부분 육식과 관련된 질병이기도 하다.
세종은 54세 승하하였는데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육식을 좋아했다고 한다.
아버지인 태종이 자신이 죽은 후 상중에도 고기를 먹을 수 있도록 유언을 할 정도였다.
그리하여 세종은 안질, 종기, 부종, 설사 등을 수시로 앓았고 서른이 넘어 벌써 당뇨로 고생하기 시작했다.
말년의 눈병, 안질도 당뇨합병증으로 현대의들은 추정한다.
고려 때까지 청정하였던 채식 문화가 왜 조선시대에는 무너지기 시작하였는가?
많은 이들이 몽골(원나라)의 침략으로 인해 육식문화가 들어오기 시작했고, 조선이 건국하면서 유교로 국교를 바꾸게 되면서 육식에 익숙해지기 시작했음을 지적한다.
고기를 넣은 만두나 고기를 뼈째 고아먹는 설렁탕이 바로 몽골족의 풍습이고, 공자는 당시 중국의 풍습대로 사람의 고기까지 먹었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이니 말이다.
특히나 고기와 생선이 포함되었던 유교의 제례예식은 왕실 뿐만 아니라 사대부, 일반 백성들에게 까지 전파되었다.
그러나 이전보다 고기를 더 먹게 되었다는 조선시대라 할 지라도, 우리의 주식은 여전히 쌀을 중심으로 한 채식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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