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채식연합

그녀를 취재하기 전날 저녁, 동네에서 친구들을 만났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내가 말했다. “나 내일 인터뷰하러 가는데 채식을 하는 여자야.” 그때까지 아무런 반응이 없던 친구들은 다음 대사가 이어지자마자 일제히 나를 쳐다봤다. “보디빌더야. 대회 때마다 메달을 놓치지 않는· · ·.”

잠시 후 정말 채소만 먹느냐, 채식 인들의 대회가 따로 있는 것 아니냐는 식의 질문이 터져 나오더니 심지어는 ‘채식인 전용 보충제’가 굉장히 비싼 가격에 유통되고 있을 것이라는 억측까지 나왔었다. 나는 스마트폰 메모장에 그 질문들을 받아 적었고 틈틈이 개인적인 질문들을 더했다. 사실 나 역시 묻고 싶은 것이 많던 터라 메모장은 금세 빽빽해졌다. 채식이 건강과 직결되는 것은 이미 느끼고 있었지만 단단하고 굵직한 근육을 만드는 데에는 한계가 있을 거로 생각한 내게, 그녀가 보내준 대회 당시의 사진은 적잖이 충격적이었다.

게다가 그녀는 대담한 비건(vegan) 보디빌더로, 우리 쪽에 먼저 연락을 취해왔다. 할 말이 많이 있으니 자신을 위해 우리 ＜비건＞의 페이지를 할애해 달라는 전화였다. 그렇지 않아도 이미 우리의 더듬이에 걸려 있던 그녀였는데 참 신기한 일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8월부터 ＜비건＞에 ‘채식과 운동’에 대한 그녀의 ‘현실적인’ 이야기가 연재된다. 앞으로 우리들의 건강한 ‘라인’을 만들어 줄 그녀, 미리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Q.확실한 비건(vegan)인가? 그렇다면 언제부터?

2010년 가을인가 겨울이었어요. 그때는 요가 지도자로 활동하고 있다가 헬스 쪽으로 눈을 돌릴 때였죠. 사람들의 몸을 관리하게 되면서 ‘식단’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어요. 그러다가 책을 한 권 읽게 됐는데 존 로빈스의 ＜육식, 건강을 망치고 세상을 망친다＞였어요. 그때까지도 육식하고 있던 터라 채식을 권장하는 책이나 영상들을 잘 보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그 책은 결국 끝까지 읽었어요. 한 장 한 장 넘기기 무서웠지만 계속 읽어 나갔어요. 멈출 수가 없더라고요. 그 책을 다 읽고, 정신이 혼미해졌어요. 그 뒤엔 단 한 번도 고기를 먹지 않았어요.

Q.보디빌딩을 택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

‘채식을 하는 사람들이 건강하다’ 까지는 대부분 인정하는 분위기지만 ‘튼튼하다’, ‘강하다’라고 생각하지 않잖아요. 대부분의 사람이 채식 인에 대해서는 힘이 없어 보이고 지나치게 마른 모습을 떠올릴지 몰라요. 저는 ‘채식이 좋다’는 사실을 넘어서 ‘채식이 완벽하다’는 말을 전해 주고 싶어요. 그래서 보디빌딩을 생각하게 된 것 같아요. 무엇보다 확실한 증명이니까.

Q.비건 보디빌더로서 평소에 힘든 점은 없나

운동하는 일이 원래 힘든 일이에요. 근육을 키운다는 게 일단 근육을 끊어내는 일이거든요. 그게 회복되면서 더 튼튼하고 큰 근육이 되는 거죠. 섬유 조직이 다쳤으니 음식 섭취를 잘 해서 회복을 도와야 해요. 이때 다들 채식이 도움이 안 될 거로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아요. 근본적으로 보자면 육식보다 채식이 훨씬 도움이 돼요. 고기는 일시적인데다가 부작용도 많아요. 그러니까 채식을 해서 특별히 힘드냐는 질문에는 ‘아니요’ 라고 대답할 수 있습니다.

Q.비건 보디빌더가 되기 전에 그것이 옳다는 확신이 있었나? 대부분 노련한 개인 트레이너가 이끌어 주던데, 혹시 특별히 영감을 주신 분이 있는지.

없었어요. 대부분 어이없다는 분위기였어요. 무시하는 분들도 많았고. 한번은 유명한 트레이너에게 “제가 채식을 하는데 어떤 식의 식단을 짜야 좋을까요?” 물었더니 ‘절대로 안 된다’는 대답이 나왔어요. 닭고기나 연어 등에 관해 얘기 하시길래 다시 한 번 제가 채식 인이라고 말했는데, 저를 한심하게 여기시더라고요. 화가 많이 났어요. 무시당하는 기분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공부를 하지 않는 트레이너’에 대한 실망감이 컸던 것 같아요. 동료도 비아냥이 심했는데 그런 것들이 가슴에 남더라고요. 그때부터 ‘되든 안 되든 해봐야겠다’ 생각하며 채식과 운동을 병행했어요. 제 몸에 실험을 한 거에요. 확신 같은 건 없었어요. 그러고 나서 얼마 후에, 제가 채식으로 전향한 뒤 열린 첫 보디빌딩대회에서 1위를 했어요.

Q.그녀는 그 뒤로 열린 대회에서 단 한 번도 수상을 놓친 적이 없다. 하루의 시작은 졸린 눈으로 운동화 끈을 매고, 집 근처를 뛰는 일이라고. 갑자기 궁금해졌다. 운동을 하지 않는 시간에 그녀는 뭘 할까.

명상을 좋아해요. 가부좌를 틀고 허리 세우고 있는 명상 말고요. (웃음) 혼자 길을 걸을 때나 밭을 돌보는 와중에 생각을 깊이 하는 것도 명상 아닐까요? 심지어 설거지하는 동안에도 굉장히 편안하게, 생각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잖아요. 저는 그런 시간이 좋더라고요. 그리고 강아지들과 놀아주는 시간도 아주 좋아합니다. 서로 놀아주는 시간이요.

Q.앞으로 어떤 내용을 전해주고 싶으세요?

운동에 관련된 대부분 서적은 육식을 권장해요. 제가 운동을 할 때에도 그런 점이 아주 힘들었어요. 그러니까 제게 책을 읽고 공부를 한다는 건, 두꺼운 책에서 제게 도움이 될만한 내용을 뽑아내는 일이었어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채식인들을 위한 정보’들이 쌓이더라고요. ＜비건＞을 통해서 그런 걸 전해 드리고 싶어요. 처음에는 큼지막한 오해들을 풀어주고, 그 다음엔 직접 도움이 되는 섬세한 정보들을 알려주려고요. 그리고 한 가지, 제가 채식을 하는 이유는 동물들 때문이거든요. 무엇보다 그 이유가 가장 커요. 채식을 권장하며, 그것이 동물들의 고통을 덜어줄 수 있길 항상 바랍니다.